레슨 학원구인구직 콘서트 콩쿨 정보 카페 조율 쇼핑
현재위치 : HOME > PIANO 뉴스   현재
- HOME
- 전체공지사항
- PIANO 관련뉴스
- 관리자에게

    PIANO 관련뉴스

 

번호 제목 등록 조회
[세설] 가을바람 타고온 오터의 노래/안치운

[세설] 가을바람 타고온 오터의 노래/안치운





[한겨레] 지난 4월, 서울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독창회가, 성남에서는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독창회가 동시에 열렸다. 바르톨리의 인기는 그녀가 젊었을 때부터 있어 왔고, 게다가 이번 공연의 반주를 정명훈이 하고 있던 터라 표 사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서울 공연을 포기하고 성남 아트 센터에 가서 스웨덴의 메조 소프라노의 노래를 들었다.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앉았다. 내 곁에는 음악평론을 하는 장일범 선생이 앉아 있었다. 우연하게 그를 만났는데, 몇 마디 나눈 인사말에 그가 나보다 오터를 더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예술가 앞에 두 평론가가 곱게 앉아 있는 셈이다. 음악을 함께 듣는다는 것은 청각적으로 복종하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되도록 말하는 것을 삼갔다. 오터에 대해서도, 곧 듣게 될 노래에 대해서도. 실은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을 것이다. 음악평론을 하는 그는 얼마나 오터를 좋아할까, 무슨 연유로 먼 데 사는 한 가수를 흠모하게 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었다. 견주는 것이 아니라 글자그대로 좋아하는 깊이를 알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들의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노래하는 오터를 쳐다볼 때가 있었다. 들리는 소리는 죽음으로 간다. 우리들은 그 목소리에 삼켜졌다.


극장이라는 큰 공간에서 노래하는 일은 무척 단순해보이지만, 인간과 공간, 관객과 노래하는 자신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복잡성을 다 보여주기도 한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이에게 극장은 무한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노래하는 오터는 한 그루 나무와 같았다. 바르톨리의 첫날 공연을 가서 들었던 친구들은 나이 마흔이 된 체칠리아가 무대에서 지나칠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유명한 정명훈이 반주를 한 탓일지도 모르는데, 체칠리아는 맘껏 노래하고 흥에 겨워 감정을 지나치게 노출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열정 가득한 이탈리아 사람의 풍모를 지닌 체칠리아의 매력으로 받아들였다. 젊은 시절, 그녀는 참 아름다웠고, 맑았다는 기억이 내게 남아 있다. 반면에 나이 쉰을 넘은 안네는 무대에서 북유럽의 과묵함으로, 노래의 절정에 이르러서도 살짝 어깨를 들어 간결하게 표현할 뿐이었다. 눈가에 주름이 있는 오터는 장밋빛 벨벳 옷을 입고, 환한 웃음으로, 오랫동안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 포르스베르크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노래에 겸손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관객들 앞에서 웃는다. 그 웃음은 노래하기 전 앞당겨진 관대함과도 같았다.


오터의 노래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무대는 북유럽 노르웨이 숲 속의 정경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레이놀드 앙이 작곡한 프랑스 가곡 다섯 곡을 부를 때, 특히 <그녀의 둥지에 매혹되었을 때>는 노래 속 가사처럼 오터의 가슴이 피아노의 부드러운 반주와 함께 사랑으로 일렁이는 가슴소리로 내게 다가 왔다. 불어로 된 가사로 이해할 수 있었던 노래의 정감은 나무의 꿈인 꽃처럼 다가왔다. 나는 청각적으로 매혹당했다. 아, 좋다. 지성미 넘치는 오터와 그가 부른 노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노래하는 오터를 소년이 되어 올려다보았다. 노래하는 50대 여성 앞에 나는 중학교 학생이 되어 있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슈만의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20여분 듣고 있을 때, 나는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슴 설레었던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가고 돌아오지 않는 사랑의 무늬와 같았다. 오터의 노래는 늙어가는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시간의 주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에 복종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했다. 음악에 매혹당하는 것은 참으로 비물질적이다. 그래서 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나는 중학교 때, 슈만의 <나비>와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음악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로 처음 들었다. 그 후 유럽에서 오터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고, 어린 시절을 되새길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 한동안 슈만의 노래들을 듣지 못한 채 지냈다. 슈만은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현악과 심포니에 가려져 있었던 탓이리라. 내가 다시 슈만을 듣기 시작한 것은 지난 가을 이후부터였다. 그럴 만한 이유는 많았는데, 늙어가는 내 몸이 슈만의 음악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날 1부는 레이놀드 앙, 클로드 드뷔시, 얀 시벨리우스, 베를리오즈, 조세프 캉트루브와 같은 프랑스 노래로, 2부는 브람스, 슈만,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와 같은 독일 노래로 수놓아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오터가 90년대에 녹음한 두 개의 앨범을 이어 들었다. 들을수록 오터의 노래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노래처럼 아득하다. 봄밤에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어찌 노래에 대한 기억을 헛것이라고 내칠 수 있을까! 가을바람 불기 시작한 요즘, 은근슬쩍 그 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듣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아름다움 앞에 그냥 내 몸을 맡긴다. 오터의 노래는 내 안으로 밀물처럼 파도처럼 와 닿는다. 이제 그 느낌은 아득하다. 음악이 파도처럼 나를 덮치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안치운/호서대 교수·연극학과, 연극평론가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2 3 4 5 6 7 8 9 10 ▶▶

회사소개 | 도움말 | 제휴문의 | 이용약관 | 개인정보 보호정책 | 관리자메일 | 문의메일 | 불량구인구직신고
주소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709-8 조양빌딩5층 | 모든문의는 하단 관리자메일 이용
통신판매업 신고 : 제2011-서울서초-0239호 | 사업자등록번호 : 114-07-80054
아이러브피아노 | 관리자메일 :
ilovepiano@ilovepiano.com | 개인정보관리자 대표자